생각의 자투리

어른이 된다는 것

킴따 2023. 5. 17. 23:50

가정의 달 5월. 

 

한국이라면 따뜻해지는 날씨, 가정과 학교에서 있는 이런저런 이벤트로 한창 바쁠 달.

그런 5월에 나의 절친한 친구는 가족을 잃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사는 곳과 하는 일이 많이 달라진 지금은 그렇게 매일같이 연락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삼일장 기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의 며칠간 가능한 친구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다.

혼자 생각에 깊게 빠지는 시간을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의 한 가운데에서 헤매고 있으면서도 친구는 스승의 날, 아이들 유치원 선생님 인원수에 맞춰 간식을 준비했다.

어버이날이 아니어서, 그나마 지나고 나서라 다행이라 해야 할까. 내 친구는 앞으로 어떤 5월을 보낼까.

몇 년이 지나야 온전히 아리는 마음 한편이 없는 가정의 달 5월을 보낼 수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십대 때 생각하던 어른은 스무 살이 되어 민증을 까고 술을 마실 수 있고, 선거를 할 수 있고, 부모님의 동의가 필수가 아닌 여행의 자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대학생 때 생각하던 어른은 번듯한 직장에 입사를 해서 시험기간 따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퇴근 후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십 대 중후반 때 생각하던 어른은 회사에서 신입 딱지를 떼고 승진을 하고, 맡겨진 일을 착착 처리하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삼십 대 때 생각하던 어른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면서 이십 대 중후반 때 생각하던 모습이 조금 더 진화한 모습이었다. 여전히 회사에서 잘 나가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어버이날이나 부모님 생신 때 Flex 할 수 있는 모습.

그러면서도 결혼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자기 가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다른 방식의 어른이 된 친구들의 모습도 보아왔다.

 

사십대를 바라보는 삼십 대 후반.

이 정도면 경험치 어느 정도 쌓인 어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친구의 가족 장례에 참석하고 발인까지 친구의 곁을 지키면서 '아, 아직 나는 어른이라고 하기엔 경험한 것이 적구나'라고 느꼈다. 

이 나이에 외국에 살면서 한국의 장례에 몇 번이나 참석했겠나.

2년 전 할아버지 장례식에도 국경이 닫혀있어서 참석을 하지 못한 나는, 부모님이 카톡으로 알려주시는 주의점을 몇 번이고 복기하면서 인사를 드리러 갔다. 

다른 친구는 근조화환을 보내면서 버벅댔다고 했다. 그럴만도 하다. 삼십 대들이 장례식에 몇 번이나 참석을 했으며 화환을 보내봤을까. 우리는 이렇게 슬픔에 잠긴 친구를 위로하면서 어른이 알아야하는 것을 또 하나 배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경험하지 못 한, 그렇지만 배워가야 할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스무살, 성인이 되던 때 느꼈던 두근거림만 가득했던 신나는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서일까. 

인생의 절반가까이를 어른이라는 타이틀로 살아왔으면서, 문득 '어른'인 것이 자신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