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나오는 대답은 커피 중독자라는 대답이다.
펜더믹 이전 회사 사무실 출근하던 시절에는 스타벅스 골드회원은 1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쉽게 포인트를 쌓았다.
스타벅스 말고 다른 카페 스탬프 카드? 이것도 껌이었다. 밖에 나갈 시간이 도저히 없으면 회사 팬트리에 비치되어 있는 커피머신 혹은 콜드브루를 들이켜곤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해외여행 기념품? 커피콩이었다 (아니면 스타벅스 카드).
커피 하루에 얼만큼 마셔요라는 질문에는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 두 잔이요라고 대답을 했었다.
웃기게도 이렇게 커피를 들이켜도 밤에 잠은 꿀잠을 자는, 소위 말하는 카페인이 안 듣는 -반응이 무딘- 사람이었다.
이렇게 커피를 들이붓던 사람이 펜더믹으로 인한 재택근무 전환이 되었을 때 어땠을까.
그저 커피콩을 자주 사야한다는 불편함이 있었을 뿐, 집에 드롱기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집에 있는 날 마시기 위해 사다 둔 커피콩, 아니면 해외여행 다녀온 친구들이 사다 준 그 나라의 커피 로스팅 맛집의 커피콩들이 집에 가득했고, 구독하고 있던 커피콩 배달 서비스가 있어서 언텍트 시대에도 홈카페를 유지하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커피콩 구독 서비스가 생소하던 2016년부터 구독하던 커피 로스터의 커피콩 배달 서비스가 있다.
원산지, 분쇄도 (홀빈, 분쇄-어떻게 내리는지에 따라 세부 선택필요-, 드립백), 무게, 배달 빈도를 정하고 주문을 하면 갓 로스팅해 신선한 원두가 내가 요청한 요건에 맞춰 준비되어 우편함으로 배달된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곳은 월요일에 로스팅, 수요일에 배달알림 연락이 오고, 보통 목요일에 우편함에 배달되어 있다.)
나는 집에서 커피 마시기 직전에 커피콩을 갈아내리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 용으로 분쇄한 팩을 집에 구비해두고 있었는데, 펜더믹 이후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하루에 여러 잔 뽑아 내리게 되면서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원두를 150g씩 4주에 한 번씩 받았었다.
싱가포르에도 커피 로스터가 여러 군데 생기면서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커피콩의 종류도 늘어나서 펜더믹 기간 동안 여러 로스터의 콩을 시도했었는데, 2022년 9월 전환점이 찾아온다.
3년 만에 귀국해 건강 검진에서 위 내시경을 했는데,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발견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직장인의 반려질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카페인 반응이 둔한 몸이라도 위는 다를 수 있다며, 커피를 끊지 못하겠으면 콩을 디카페인으로 바꿔보는 건 어떠냐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나만 진료실에 있었으면 "아, 네 알겠습니다"라고 한 귀로 흘렸을지도 모르지만, 그 진료실에는 엄마도 동석해 있었고, 엄마의 미소의 숨겨진 압박에 져버린 나는 커피콩을 디카페인으로 바꾸기로 약속했다.
문제는 디카페인 커피콩을 판매하는 로스터는 많지 않다는 것.
아무리 다양한 지역의 커피콩을 판매하는 곳이어도 막상 디카페인을 찾으니 없거나, 원산지 고를 찬스 따윈 없고 그냥 딱 옵션 하나.
결국 지금은 5개월째, 예전부터 이용하던 커피콩 구독 서비스에서 디카페인 커피콩 250g을 3주에 한 번씩 받고 있다.
다른 옵션도 찾아보고 싶은데 온라인에는 잘 안 보이는 걸 보니 카페를 발품 팔아봐야 뭐라도 찾게 되지 않을까
디카페인으로 갈아타고 5개월, 위가 괜찮아졌는지는 모르겠고 (원래도 위염 있는지 몰랐으니), 카페인 디톡스가 됐는지 어쩌다 한 번 카페인 들어있는 커피를 예전처럼 많이 마시면 보통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다. 확 깨는 느낌이 든다던가, 너무 많이 마시면 심장이 빨리 뛰는 게 느껴진다던가, 잠을 쉽게 들지 못하던가 (!)
십몇년을 커피를 들이켜 부어도 반응이 이뇨작용 말고는 없어서 아 나는 카페인이 작용을 아예 안 하나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카페인 디톡스가 되어서 건강해진 느낌보단, 약해진 느낌이 들어서 조금 별로이긴 한데...
혼나는 건 싫으니 계속 디카페인 커피를 밀고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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